- STORY
- 01스토리
유난히 짧은 여름방학을 보내고 맞이하는 개학일! 학생들은 자기들만 그런 줄 알지만 교사들 역시 개학날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일주일은 더 쉬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2주라는 짧은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늘 역시 네버엔딩으로 진행 중이다. 나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 좀 하고 글 꽤나 쓴다고 하는 친구들인데, 역시 창작의 고통의 출산의 고통처럼 어려운 법인가 보다. 자기의 지나온 18년 동안의 삶을 잘 포장해서 드러내기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요딴식으로 생활기록부에 있는 것만 쭈욱 나열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
“너는 도대체 누구니?”, “그러게요, 저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시답지 않은 선문답을 주고받으면서 자기소개서를 반복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에어컨 바람에서도 서로 얼굴을 붉히고 계면쩍게 웃으면서 연신 손부채질이다.
이처럼 고민스러운 자기소개서!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 참 고민스럽다.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커지고 자기소개서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학생들은 자기소개서만 잘 쓰면 로또처럼 인생 역전이 되어 내신의 불리함을 한꺼번에 뒤집을 수 있다고 하는 요행을 바라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무엇일까?
첫째,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자기소개서라는 음식에 들어갈 재료를 마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주방장과 좋은 조리법(recipe)이 있다하더라도 식재료가 좋지 않으면 맛없는 그저 그런 음식이 되듯이,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매력적인‘소재’를 잘 끄집어내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어떤 소재를 찾아야 하는지 막막하다는 제자의 호소에 나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신선한‘소재’를 찾으라고 충고하였다. 스스로 3년 동안, 열정을 쏟아왔던 일이 무엇이었고 진로에 대한 고민들은 어떠한 항목으로 선생님들이 학교생활기록부에 정리해 주셨는지를 꼼꼼하게 살피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처음부터 날 것 그대로 무작정 쓰다 보면 학교생활기록부에 있는 내용을 피상적으로 나열하고 의미 없이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게 되어 시간낭비하고 정작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학교생활기록부 속에서 자신만의 장점이 부각되는‘소재’를 찾는 것, 그것이 자기소개서의 시작이다.
둘째, 문항의 질문 내용에 걸맞게 써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기소개서의 1번 문항은 학업역량과 지적능력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나 지도하는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읽다보니 학교생활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수업시간에서 선생님과 교감하면서 자신의 학업역량을 어떻게 키워나갔는지 여부가 쏘옥 빠져있고, 자율 동아리와 자율학습을 어떻게 자기 스스로 열심히 하였고 성적을 어떻게 올렸다는 등의 상투적인 표현들로 가득 차 있었다. 2번 문항은 학교 활동과 전공적합성을 평가하는 항목이라 전공과 관련된 학업역량, 지식의 확장,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 좋으므로 독서활동을 잘 활용하여 자신이 읽은 책을 이러한 질문과 관련지어 깊이 있게 서술할 수 있다면 효과적으로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어필할 수 있다. 3번 문항은 인성적 측면을 보고자 하는 항목이기 때문에 주로 봉사 활동의 경험에서 찾아 작성하고, 협력과 갈등 관리는 주로 리더십을 발휘한 활동에서 갈등의 관점보다 협력의 관점에서 돋보이는 것을 찾아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3번 문항은 분절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같은 흐름으로 가는 것이 좋다.
셋째, 위 내용을 염두 해두고 일단 글자 수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써 보자.
성장 과정, 기억에 남는 학교생활, 부단히 노력하였던 과정과 결과, 앞으로의 진로계획 등을 자신이 그동안 읽었던 책들과 참여한 교내외대회, 봉사활동, 동아리, 자율동아리 활동 등과 비교해서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자기소개서에 대한 표절과 유사도 검증 시스템이 한층 강화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남의 것을 살짝 베낀다거나 현학적으로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다소 투박하고 거칠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진솔하게 남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과 능력이 드러나도록 자기소개서를 꾸며야 할 것이다. 또한, 원서마감 임박해서까지 자기소개서를 붙잡고 주어진 양식에 맞게 끊임없이 퇴고를 거듭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만 글이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짜임새 있게 정리된 최종적인 자기소개서를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자기소개서의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