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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성경의 말씀처럼,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아이가 한 명 있다. 나를 참 많이 힘들게 했던, 한편으로는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던 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고등학교를 재수하여 들어왔다.
그의 수첩엔 재수하면서 함께 놀던 남녀 친구들의 명단과 연락처가 200명이 넘었다. 머리는 늘 삭발이었고, 눈가에는 칼자국이 나 있었다. 한 마디로, 험상궂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가기조차 힘든 얼굴이었다.
출석부에는 출석한 날보다 결석한 날들이 더 많았다. 주말이나 공휴일이 끼면 으레 그 앞뒤를 끼어서 4~5일씩 결석했다. 당시 수업 일수가 220일 이상이고 74일 이상이면 퇴학도 시킬 수 있었던 것에 비춰보았을 때, 이 아이의 학교생활은 매순간 위태로웠다. 자퇴서를 한 8번은 받았던 것 같다. 거의 매달 받은 셈이다. 각서는 수도 없이 받았다. 이 아이에게는 꿈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 했다.
많이 혼을 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결석하면 퇴학시킬 수밖에 없다고 협박도 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혼을 내고, 자퇴서를 받고, 각서를 받아도 이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아이의 어머니를 만나 협조를 구해보기도 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담임으로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이 아이는 변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 아이는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이 아이의 선생으로 나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안타까웠다. 그러나 생각하고 또 믿었다. 이 아이도 집에서는 희망이고 그 무엇보다 귀한 아이라고. 그리고 이 아이도 타고난 달란트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음이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기다리고 기도했다. 결석일수를 살펴보니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길은 출석관리를 해 주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믿었다. 또 기다렸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너를 믿는다. 무엇을 해도 좋으니 너에 대한 내 믿음만은 깨지지 않도록 해라.”
다행히도 이 아이는 2학년에 올라가서는 결석일수가 많이 줄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는 더 줄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운동장을 걸어가는데 어떤 아이가 뛰어오더니 “선생님, 고맙습니다.”하고 내게 절을 한다. 바로 그 아이였다. 졸업식 다음 날 또 학교에 와서는 내게 필리핀으로 유학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공부하지 않던 아이가 유학을 간다한들 얼마나 공부할까 사실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장한 결정을 격려하며 축복해 주었다.
수년 후 그 아이는 W호텔의 매니저급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업계에서 알아주는 인물로 성장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국내 매리어트 호텔의 몇 안 되는 매니저가 되었다. 어느 날인가는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저 교수가 되었어요.”
“…”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이 아이는 이제 자기 사업을 하는 어엿한 대표이사가 되었다.
그 많은 어려움과 갈등, 힘든 결정의 순간순간, 번민의 시간을 갖게 했던 이 아이.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일 외에 해줄 게 없었던, 그래서 무기력하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던 내게 이 아이는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교사는 맡은 아이들을 인정하고 또 차별 없이 믿어주고 그 가능성을 바라보며 격려하고 축복해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몸소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이 땅의 선생님들 역시 다음 시 속의 화자처럼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